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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쓴 초고를 15년 뒤인 2023년 완전히 뒤집고서 올해 완성했다는 이 소설은 그 공력만큼 추켜세울 면모가 적지 않다. 독자가 이 작품을 읽어내는 방법 또한 다양할 법하다. 모처럼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소설을 만났다. 은유로서 참혹한 것은 더 참혹해지고, 아름다운 것은 더 아름다워진다. 은유는 동시에 은폐함으로써, 침묵은 침묵으로, 슬픔은 슬픔으로, 그리하여 진실은 더 진실이 된다 ef론카드 연체 .



파사주 l 강성봉 지음, 한겨레출판, 1만6800원


강성봉 작가의 새 장편소설 ‘파사주’에 관한 이야기다. 10대 둘이 주인공이다. 말을 조금 더듬으며 믿고 따르는 데 길들여진 유림과 의심 많고 좀 더 반항적인 직장인 학자금대출 -그래 봐야 아이였고 청소년인- 해수. 유림이 해수를 만나 듣고 보고 알아가게 되는 해수의 말뜻이 서사의 저류에 유장히 흐른다.
가령 해수의 이런 말,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나?”
“이건 믿음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얘기야. 그리고 구원이란 누가 해주는 게 아니거든.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 수영 연기 거지.”
“(너희도) 인간으로 살고 싶어?”
모호하거나 원론적이고 또한 관념적인 저 수사들은 은폐하고 은유하며 마침내 발설하기 위한 암시와도 같다. 소설 저류엔 가락이 함께한다. “너희 다 가나/ 다 같이 가지/ 어디로 가나/…/ 힘들어도 어쩌겠나/ 눈물 나도 어쩌겠나/ 애들이 가자는데 어쩌겠나.”
애들 행복전세자금대출 이 가자는데 어쩌겠나, 애들이…. 해수와 같은 애들이 ‘너희’다. 알듯 말듯 그 흐름에 쓸려 동행하는 게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일이다.
유림과 해수는 8살, 12살부터 갇혀 지낸 보육원을 17살이 되어 탈출한다.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보육원은 병영 시설과 다르지 않다. 1980년대 지어 올린 5층짜리 검붉은 벽돌집의 외관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상선 채용 . ‘하나의말씀’이란 이름의 기독교 단체 대표가 군 간부 출신인데다, 그의 아들이 보육원장을 맡고 아래 중대장, 소대장, 조장 구도로 90명가량의 아이들을 통제 관리한다. 통제의 방편으로 믿음만 한 것이 없고, 불신의 대가로 폭력만 한 게 없다.
이런 기호들로서 독법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유림’과 ‘해수’라는 이름도 범속치 않다. 작중 따라가며 알 만해진다. 그들은 한 인간을 넘어, 각기 하나의 세계다.
‘하나의말씀’ 또한 아이들 머릿수에 따라 보조금을 타 내고, 자선을 비즈니스 삼는 종교 단체나 풍자한 것이겠는가. 유림과 해수를 ‘비인간화’하는 폭압적 세계가 하나의말씀이다. 하나의말씀에 때로 ‘어른의 세계’를 대입해도 무리랄 게 없다. “아버지 선생님”으로 불리는 단체 대표가 원생들에게 군림하여 내뱉던 말이 뭐던가.
“하나님은 말을 안 해, 말씀만 하시지. 말은 입으로 하는 거지만 말씀은 그게 아니거든. 마음에서 일어나는 걸 판단하지 않고 흘러가게 두는 거야. 말은 판단하는 거니까. 판단 이전에 말씀이 있었으니, 너넨 그걸 믿어야 돼.”
그리고선 마침내 그는 “닿을 듯 닿지 않”게 다가가 “피부 톤이 하얗진 않은데 매끈하네” ‘말씀’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아 아이를 잉태”하는 원생들이 끝없이 생겨났으니, 어떤 진실은 한편으로 은유 말곤 감당하기도 어렵다.
의심하고 질문하는 해수가 저들 세계에선 가장 불온하다. 아버지 선생님 말대로라면 원생들은 모두 영혼 없는 “진흙에 불과”하다. “지금 뭐가 잘못됐다는 판단을 버려야” 된다. 복창만 가능하다. 가만있으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라”….
벽돌집을 탈출한 유림과 해수의 여정이 소설의 뼈대다. 다만 작중 황천과 명도로 표명된다. 살고자 벗어났는데 왜 저승인가. 끔찍한 기억을 되짚는 과정은 다시 죽길 요구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터. 무엇보다 유림의 “믿음직한 안내자”이자 전부인 해수가 실상 보육원서 맞아 이미 죽은 자란 사실이 중후반 놀랍게 드러난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나?” 되묻던 까닭이고, 그 구도의 길에서 잊어버려야 할 것,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것들을 유림은 깨우쳐 간다. 소설 들머리부터, 망혼 된 해수와 함께 유림이 또 만나게 되는 숱한 해수들을 애도하는, 고통스러운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순례인 셈이다. 그리하여 벽돌집 세계의 진실도 겨우 조금 드러난다.
‘파사주’는 강 작가의 두번째 장편이다. 202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 ‘카지노 베이비’가 첫 책이다. 쇠락한 탄광촌에서 변모한 카지노 도시 사람들의 애환을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고 말문 여는 아이의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도박’이 뜻밖으로 ‘파사주’에 등장한다는 것 외 두 소설은 퍽 다르다. “이전 소설과 같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중국 작가 옌롄커의 창작 원칙을 떠올리게 한다.
유림이 말을 더듬게 된 계기가 있다. 유림이 품은 엄마와의 유일한 기억이기도 하다. “넌 참 못생겼다, 그 새끼를 닮아서”라 말하며 ‘연’을 끊으려는 엄마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붙들고만 있는 참담한 사태의 참담한 묘사가, 생명력 가득한 아이 동하늘을 화자로 한 ‘카지노 베이비’ 작가의 두번째 작품에 있다. 엄마와의 기억을 해수와의 기억으로 대체하여 ‘합수’하려는 게 마지막 유림의 행위 같다. 세월호 침몰과 같은 사회적 참사와 재난, 전쟁, 무책임한 어른계에서 버려진 세계들의 무참한 운명을 남은 유림들이 이제 깨부수는 여정으로까지 읽는다면, 그 독법은 과잉된 것인가.
“파사주는 말 그대로 사주, 즉 주어진 운명을 깨뜨린다는 뜻”이며 “동시에 사주를 볼 때 쓰는 용어”로 “나와 주변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그 운명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라고 작가는 후기에 썼다. 후자가 희망에서 희망이라면, 전자는 절망에서 희망이다. 가자지구 아이들을 본다면 절망에서 절망일 뿐이지만, 해수는 죽어서도 말하고 있다. 구원은 나 자신의 몫이라고.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