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하기 위해 오늘부터 세계줄기세포허브 소장직을 비롯한 정부와 사회 각 단체의 모든 겸직을 사퇴하겠습니다. (…)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제가 이루지 못한 몇가지 숙제를 해결하고 떠나겠습니다.”

황우석 1차 기자회견

2005년 11월 24일 오후 서울대 수의대 강당. 사진 플래시가 쉬지 않고 터졌다. 100명쯤 되는 기자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줄기세포 형제’ 제럴드 섀튼 피츠버그대 교수의 결별 선언 후 열흘이 지나서야 황우석 서울대 교수는 공개석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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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2005년 11월 24일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서울대 수의대에서 난자 윤리 문제에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동안 황우석은 속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설들이 난무했다. 섀튼 결별 이유가 윤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리 위반 때문이라더라, 아무 문제 없다더라, 다른 의혹이 있다더라…. 후광이 빛나던 영웅의 주변에 흉흉한 먹구름이 끼었다. 그런데도 황우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시간을 끌었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먼저 총대를 멨다. 난자 공급을 책임진 핵심 공동연구자였다. 그는 11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난자 매매 사실을 인정했다. 황우석은 야마토통기계 몰랐다고 감쌌다.
11월 22일 MBC는 ‘PD수첩’ 1탄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을 방영했다. 논문에 쓰인 것보다 훨씬 많은 600여 개의 매매 난자가 사용된 사실, 황우석 팀 연구원이 미즈메디병원에서 난자를 채취한 기록을 공개했다. 2004년(242개), 2005년(185개) 논문에서는 총 427개의 난자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바다이야기무료 다음엔 정부가 방패로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황우석의 기자회견에 앞서 그날 오전 서울대 수의대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난자 매매는 생명윤리법 시행 전이라 불법이 아니고(불법은 아니다), 연구원 난자 기증도 윤리준칙 위반으로 볼 수 없다(위반이다)는 것이었다.
황우석은 그제야 등장했다. 난자 매매는 야마토통기계 몰랐고, 연구원 난자 기증은 자발적이었다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 해도(거짓이다) 치명적 문제가 남았다. 황우석의 거짓말이다.

“2004년 5월 네이처 도쿄특파원이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다'고 해 연구원 두 명에게서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제공자 한 명이 프라이버시 보호를 매우 강력히 요청해 네이처 기자에게 사실과 다르게 답변했습니다.”

황우석 1차 기자회견

그렇다. 이미 1년 반 전에 불거진 문제였다.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를 한국 사회는 묵살했다. 황우석은 거짓해명으로 빠져나갔고 정부와 언론은 모른 체했다. 민주노동당 등 몇몇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무시당했다. 숱하게 “윤리적 문제가 없다”고 했던 황우석의 해명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과학자로서 신뢰와 명성에 엄청난 타격이 될 일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훨씬 심각했다. 2006년 1월 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황우석 팀은 2002년 11월~2005년 11월 실험에 총 2,061개의 난자를 사용했다. 2006년 2월 2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199명 여성에게 2,221개 난자를 채취했다고 밝혔다. 2번 이상 난자를 채취한 여성도 있었다. 후유증을 겪은 두 여성은 난자의 용도와 부작용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2006년 4월 국가와 병원 상대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황우석은 연구원 난자 기증을 모르기는커녕 연구원들에게 난자기증 동의서를 돌렸다. 그는 또 박을순 연구원이 난자를 채취하러 병원에 갈 때 동행했다. 박을순은 주변에 보낸 이메일에서 두려움을 토로했지만 거부하지 못했다.
생명과학 연구 대상을 보호하는 헬싱키 선언은 이런 이유로 피험자의 동의에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당시 황우석은 "헬싱키 선언이 뭔지도 몰랐다"고 했다. 한양대 IRB는 논문 요건을 갖추기 위한 요식이었다. 황정혜 황윤영 한양대 교수는 IRB 통과에 힘쓴 공으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 난자 관련 규제와 연구진실성 제도는 황우석 사태를 겪은 후 마련됐다. 세계적 수준의 성과에 근접하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지 못한 것이 2005년 한국이었다.
모든 사실이 드러나기 전에도 세계적 연구성과는 윤리 위반으로 얼룩진 게 분명했다. 줄기세포 연구가 여성 건강을 침해할 위험은 사실이었다. 제도는 작동하지 않았다. 황우석의 거짓말도 확인됐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2005년 11월 21일 오후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매매 난자가 줄기세포 연구에 쓰인 사실을 인정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여론이 들썩였다. 그러나 위기는 황우석의 것이 아니었다. 비난은 전혀 다른 쪽을 향했다.

책임자가 희생자를 자처한 순간
황우석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서울대 수의대 기관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이영순)는 “황우석이 연구원 난자 기증을 말렸다”고 두둔했고, 서울대병원(병원장 성상철)은 세계줄기세포허브 소장직을 계속 맡길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난자 기증에 실비 보상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언론 보도는 온정적이었다. 황우석에게 “실험실로 돌아오라”는 여론이 커졌다.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이 줄을 이었다. 난자 파문에도 황우석은 굳건했다. 더 강해졌다.
제물이 된 것은 MBC였다. 'PD수첩' 게시판에 항의와 욕설이 쏟아졌다. 'PD수첩' 광고주에 전화와 댓글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박해 결국 광고가 모두 떨어져 나갔다. 한학수 PD의 가족사진이 "죽이자"는 댓글과 함께 인터넷에 떠돌았다. 한학수는 경호를 받기 시작했고 아내와 어린 두 아이를 지방에 피신시켰다. 여론을 잠재워보려 ‘PD수첩’ 제작진은 제보자 신원을 가리고 기자회견을 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제보자에 대한 위험이 커 포기했다. 방영 후 돌아온 토요일, 11월 26일 저녁에 ‘PD수첩’에 항의하는 촛불시위가 MBC 앞에서 열렸다.
완벽한 줄 알았던 우상에게서 흠결을 발견한 건 마음 상하는 일이지만, 잘못한 이는 황우석이 아니었던가. 언론의 고발이 비난받을 일인가. 아니, 2025년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익숙한 광경인가.
비판받고 책임져야 하는 권력자가 희생자, 순교자로 치환되는 일을 우리는 여러 차례 봤다. 현직 대통령 윤석열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그는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라고 했고 체포되면서 "저는 이렇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국민 여러분들께서 (...)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구치소에선 다른 수감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데 "인권 침해"를 호소했다. 계엄 선포 이유를 밝힌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도 자신을 '전능한 거대 야당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대통령'으로 묘사했다. 윤석열에 이입하고 동일시한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을 때려 부수고 후원금 투척과 인권위 진정 등 윤석열 수호에 나섰으니, 얼마나 성공적인 희생자 되기 전술인가.
내가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은 '적들의 공격'으로만 보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있다. 감싸는 정도를 넘어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맹신이 있다. 황우석 사태 때 극단적 형태로 표출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MBC의 고발은 공격으로 여겨지며 더 많은 응원을 받았다. 그는 절대 영웅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황우석을 추앙한 것일까.
●자료: 2005년 11월 24일 보건복지부 발표자료 '서울대 황우석교수 연구팀 난자수급 조사결과', 2006년 1월 10일 서울대 진상조사위원회 조사결과보고서
●'황우석 백서: 왜 우리는 선동에 무력한가' 4회가 내일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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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2025, 왜 다시 황우석인가


• [황우석 백서] 거짓은 왜 이토록 성실한가... 진실은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917260002506)




② 난자 파문: 형제, 결별을 선언하다


• [황우석 백서] 황우석에 돈 받고 논문 로비한 섀튼, 대혼란의 막 올리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918180003626)




③ 영웅은 죽지 않는다




④ 만들어진 신화




⑤ 제보자는 왜 'PD수첩'을 찾아갔나(계속)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