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형 비닉스와 다시 찾는 당신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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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5-11-22 09:26 조회4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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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형 비닉스와 다시 찾는 당신의 밤
요즘 밤이 왜 이렇게 짧게 느껴질까?40대 후반의 남성 김씨는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에 빠졌다. 예전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밤이 깊어도 끝이 없던 것처럼 느껴졌지만, 어느새 몸과 마음은 무겁고, 밤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부부 사이에도 미묘한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자신감도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김씨는 그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고,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노화가 아닌, 남성 활력의 신호일 수 있다고.
밤의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남성 활력은 단지 신체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심리적, 신체적 피로, 혈액순환 문제,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혈류가 원활하지 않으면 성기능 저하가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자신감 하락과도 직결된다. 이로 인해 남성은 점점 사랑하는 이와의 시간에서 멀어지고, 관계도 위태로워진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성 활력은 남성 건강의 바로미터이며, 이를 개선하는 것이 곧 인생의 질을 높이는 첫걸음이라고.
필름형 비닉스는 바로 이런 남성들을 위해 탄생했다.비닉스는 혀 위에서 빠르게 녹아 흡수되는 혁신적인 복용 방식을 채택했다. 이로써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기존 알약 형태의 부담감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복용 즉시 혈류 개선을 돕고, 성기능을 활성화하는 주요 성분들이 체내 빠르게 작용하여, 하루하루 점점 더 활력 있는 밤을 경험하게 한다.
특히 혈액순환 개선에 주목한 비닉스의 성분은 남성 활력 저하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인 혈관 기능 저하를 개선한다.전문가들에 따르면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면 성기능뿐 아니라 전반적인 신체 건강과 정신력도 향상된다.김씨 역시 비닉스를 3주간 꾸준히 복용하며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처음에는 기대 반, 의심 반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아내와의 시간이 다시 예전처럼 길어지고,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밤이 짧게 느껴지던 이유가 몸의 신호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비닉스가 가진 또 다른 강점은 안전성이다.전문가들이 엄선한 성분으로 만들어졌으며, 부작용 걱정 없이 꾸준히 사용할 수 있다.남성 활력 증진을 위해 약물 복용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지만, 비닉스는 편리함과 안전함, 효과를 모두 갖춘 솔루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성 활력의 회복은 단순히 육체적인 능력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일상에서의 자신감, 업무 집중력, 대인 관계, 심지어 배우자와의 감정 교류까지.활력이 넘치면 감정 표현도 풍부해지고, 사랑도 깊어진다.이는 오랜 시간 함께한 부부가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게 만드는 힘이다.
비닉스를 선택한 많은 남성들이 전하는 후기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비닉스가 답입니다.처음에는 단순한 보조제라고 생각했는데, 내 삶의 활력 자체가 달라졌어요.아내와의 관계가 훨씬 더 가까워졌고, 밤마다 행복을 느낍니다.
밤이 짧게 느껴지는 당신의 이유는 단순한 나이 탓이 아니다.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비닉스는 당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까지 지켜줄 든든한 파트너다.밤이 짧게 느껴지는 순간부터, 다시 깊고 풍성한 사랑의 시간을 만들기까지.그 여정에 비닉스가 함께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남성들이 비닉스를 통해 자신의 밤을 되찾고 있다.그 밤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사랑의 공간이며, 삶의 에너지다.당신의 밤, 아직 끝나지 않았다.비닉스와 함께라면 다시 한번, 사랑이 넘치는 긴 밤을 맞이할 수 있다.
당신이 다시 활력 넘치는 남성으로 거듭나는 그날까지,필름형 비닉스는 변함없는 신뢰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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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119sh.info
다큐멘터리 ‘청소년 v 정부: 기후 정의를 외치다’의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2025년 11월10일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국가 온실가스를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겠다는 안을 의결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지구 기온 상승폭 1.5도 제한’ 목표를 위해 권고한 것이 61%였고, 시민사회에서 한국 상황을 반영해 요구한 것이 65%였다. 61% 권고는 상한선으로만 간신히 충족했고 65%에는 한참 못 미치는 목표다. 이러하니 기후운동 진영을 중심 백경릴게임 으로 날 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결정이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을 흔들 일은 없을 듯하다. 안타깝게도 기후위기는 그다지 정치화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정치에서 사라진 이유
기후위기를 정치화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 ‘이대 오션파라다이스게임 로 가면 2050년에 0도 상승’ 또는 ‘이대로 가면 세기말 0도 상승’처럼, 증상은 언제나 먼 미래에 나타날 것처럼 이야기된다.(물론 당연히 그렇지 않다.)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의 공범일 수밖에 없다는 점 아닐까. 우리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산업구조와 생활방식에 기대어 일상을 살아가는 까닭에 이 문제는 마치 ‘방 안의 코끼리’와 바다이야기모바일 같이 여겨지는 듯하다.
그런데 청소년 세대에게 이 문제는 전혀 다르게 와닿는다. 그들에게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2050년 또는 세기말은 자신이 살아갈 ‘예정된 미래’다. 공범이라기엔 소비력도 부족하고 정치적 결정권이나 발언권도 별로 없다. 이 정도면 공범이란 생각을 하는 게 더 어렵다. 그래서일까.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바다이야기룰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그룹이 있다면 바로 청소년들이다. 그레타 툰베리라는 인물은 이미 하나의 상징이 됐고, 그가 주도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전세계 청소년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벌이는 행동도 있다. 이른바 ‘기후소송’이다.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기후위기의 야마토게임다운로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해 이슈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저항 모델을 전세계로 확산시킨 것이 바로 미국에서 2015년 처음 제기된 ‘켈시 로즈 줄리아나 대 미국 정부’ 소송이다. 켈시 로즈 줄리아나를 비롯한 21명의 청소년·청년 활동가가 미국 정부의 반환경적 정책으로 일상과 터전을 위협받고 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기후 역행에 소송 건 미국 청소년
다큐멘터리 ‘청소년 v 정부: 기후 정의를 외치다’는 미국 청소년들의 기후소송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아낸 작품이다. 소송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서남북으로 드넓은 나라답게 그들의 사연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홍수로 대피했고, 누군가는 가뭄으로 말라버린 땅바닥을 마주했고, 누군가는 끝없는 산불을 버텨내야 했으며, 누군가는 무분별한 벌목과 석유공장 건설로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기후위기로 인해 더 자주, 더 강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로 결정한 데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실망스러운 행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부에 오바마 대통령의 기후위기 대응 관련 발언이 연달아 나오는데, 그답게 화려한 연설로 전세계가 기후위기에 맞서도록 촉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내 내레이션이 조용히 깔린다. “훌륭한 레토릭이죠. 하지만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어요.” 바로 다음 장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5대 유전지대 중 한 곳인 오클라호마를 찾아 자신의 정부가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석유를 시추했다고 자랑한다. 방송 토크쇼에 출연해 같은 자랑을 하며 으스대는 장면도 나온다.
미국 기후활동가들이 판단하기에 미국 정부는 아주 오랫동안 일관되게 이렇게 언행을 불일치해왔다. 멀리는 1980년대에 부임했던 로널드 레이건부터 아버지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아들 조지 부시, 그리고 오바마까지. 그들은 모두 환경보전과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했지만, 정당과 무관하게 실제 정책은 언제나 하나같이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 소송단은 미국 정부의 이런 태도가 지금의 기후위기를 불러왔다고 규정하며 그 책임을 묻기에 나선 것이다.
다큐멘터리 ‘청소년 v 정부: 기후 정의를 외치다’의 스틸컷. 청소년들이 미국 정부의 ‘기후 역행’에 항의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소송에 돌입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 시기인 2015년이었지만, 소송단이 본격적으로 맞서게 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였다. 기후위기를 믿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는 대통령, 파리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버린 대통령, 희대의 기후 악당. 말로나마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한 오바마에 비해 더 어려운 상대가 돼버린 셈이지만, 소송단으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입법은 숫자 싸움이고 행정은 권력 싸움이지만, 사법은 증거와 기록의 싸움이니까. 소송단 누군가 말했듯, “법정은 기후변화 부정론이 통하지 않는다”.
법원은 그저 “지금은 아니다”
소송 결과는 어땠을까. 소송단은 패배했다. 5년의 공방 끝에 연방 항소법원은 재판관 3명 중 2명의 의견으로 소송을 파기했다. ‘법원은 이 문제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였다. 기후위기가 문제인 것은 분명하고 미국 정부에 책임이 있는 것도 맞지만, 법원이 정부를 향해 어떻게 하라고 명령할 권한은 없다는 의미다.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입장에선 일면 이해되는 판단이기도 하지만, ‘권한’ 문제가 아니라 ‘생명권’ 문제로 접근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 판단이다. 영화 속에서 길게 인용되는 소수의견을 이곳에도 옮겨야겠다.(인터넷에서 전문을 구할 수 있는데, 장장 32쪽에 이른다.)
“정부는 미국이 합심한 응답을 애타게 부르짖을 정도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재난을 향한 직진을 늦추지 않았다. (…)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원이 개입할 시점을 정하는 데 엄밀한 과학 원리는 없다. 이번 소송에서 내 동료들은 ‘지금은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나는 ‘지금’이라고 한다. (…) 바다가 우리 연안 도시를 덮어버리고, 화재와 가뭄이 내륙을 거듭 유린하며, 폭풍우가 그 중간에 있는 모든 땅을 초토화할 때 남은 자들은 묻게 되리라.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조금밖에 못했을까?’”
10년 소송, 절반 이상의 성공
소송에 패배한 청소년들은 이렇게 물었다. “우리의 미래를 정통으로 강타할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에겐 발언권도 주지 않았다.” 이들은 정치가 주지 않은 발언권을 직접 얻고자 소송으로 나섰던 것이다. 실망스럽게도 그 결과는 패소였다. 패소 뒤 그들은 무력해졌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패소 뒤 잠시간의 좌절을 비춘 뒤, 카메라는 어느새 거리를 비춘다. 전세계에서 동시다발로 기후시위가 열리는 장면이다. 소송에 참여했던 이들의 표정에 지친 기색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 활동가들이 자주 인용하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이 있다. “도덕적 우주의 원호는 길지만, 정의를 향해 굽어 있다.”(The arc of the moral universe is long, but it bends toward justice.) 당장은 좌절되고 지치겠지만, 행동하는 한 반드시 정의에 다다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얘기다. 소송단도 어김없이 이 말을 인용한다. 그 단단한 믿음 하나로 지치지 않고 달려나간다.
이들은 거의 모든 주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이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2023년 큰 진전을 이뤘다. 몬태나주에서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누릴 권리”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 2025년 3월 연방대법원이 최종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소송은 10년 만에 막을 내렸지만(공교롭게도 다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의 일이다), 미국 모델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 일부 국가에선 유의미한 성과를 얻기도 했다. 이겼다면 좋았겠으나 애초의 목표는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었으니 절반의 성공, 아니 절반 이상의 성공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그들 자신이다. 2015년 당시 11살부터 22살 사이의 청소년·청년들이 소송의 주체였으니, 소송이 끝난 2025년 그들은 모두 성인이 됐다. 그들은 10년 동안 단단하게 연결됐다. 그들 하나하나가 각자의 지역에서 환경운동의 리더로 성장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 운동의 구호가 나온다. “공유하고(Share), 소통하고(Connect), 행동하라(Act).” 그들은 10년 동안 그렇게 했고, 이제는 각자가 리더가 되어 이 일들을 이어가고 있다.
헌재 설득해낸 청소년들
한국에도 청소년 기후소송이 있었다. 2020년부터 청소년과 어린이, 아기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서 기본권을 지키지 못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내렸는데, 놀랍게도 청구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수준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고 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정통으로 강타할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에겐 발언권도 주지 않았다”던 미국 소송단의 일갈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2024년 4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소송을 제기한 환경단체 활동가, 공동대리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소송의 취지와 쟁점을 설명하며 빠른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한겨레 기자 hyopd@hani.co.kr
그러나 2025년 8월 헌재 결정 1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송에 참여했던 청구인 김한나(초등학교 4학년)는 “헌재는 국가가 미래세대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가질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3~61%로 설정한 이번 결정이라고 다를까? 상한선인 61%조차 국제기준에서는 하한선일 뿐이며, 실제 정책 집행은 하한선인 53%에 연동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정부는 기후위기에 최소한으로만 대응할 것이라고 ‘자백’한 꼴이다. 이 결정에 시민의 자리는 없었다. 청소년의 자리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재판의 소수의견이 지적한 것처럼, 이대로라면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어째서 그 많은 사람이 이렇게 조금밖에 못했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이번 결정을 두고 ‘위헌적’이라는 말이 쏟아진다. 과학적·국제적 기준에 못 미치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적’이라는 약한 말이 나올 자리에 ‘위헌적’이라는 강력한 말을 둘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기후소송을 이끌어온 청소년과 어린이, 아기들의 공이다. 그들이 힘껏 자료를 끌어모으고 헌법재판관들을 설득해냈다. 미국 청소년들이 열어낸 길을 한국 청소년들이 이어서 걸은 덕분에 우리는 강력한 무기 하나를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2025년 11월10일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국가 온실가스를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겠다는 안을 의결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지구 기온 상승폭 1.5도 제한’ 목표를 위해 권고한 것이 61%였고, 시민사회에서 한국 상황을 반영해 요구한 것이 65%였다. 61% 권고는 상한선으로만 간신히 충족했고 65%에는 한참 못 미치는 목표다. 이러하니 기후운동 진영을 중심 백경릴게임 으로 날 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결정이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을 흔들 일은 없을 듯하다. 안타깝게도 기후위기는 그다지 정치화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정치에서 사라진 이유
기후위기를 정치화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 ‘이대 오션파라다이스게임 로 가면 2050년에 0도 상승’ 또는 ‘이대로 가면 세기말 0도 상승’처럼, 증상은 언제나 먼 미래에 나타날 것처럼 이야기된다.(물론 당연히 그렇지 않다.)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의 공범일 수밖에 없다는 점 아닐까. 우리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산업구조와 생활방식에 기대어 일상을 살아가는 까닭에 이 문제는 마치 ‘방 안의 코끼리’와 바다이야기모바일 같이 여겨지는 듯하다.
그런데 청소년 세대에게 이 문제는 전혀 다르게 와닿는다. 그들에게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2050년 또는 세기말은 자신이 살아갈 ‘예정된 미래’다. 공범이라기엔 소비력도 부족하고 정치적 결정권이나 발언권도 별로 없다. 이 정도면 공범이란 생각을 하는 게 더 어렵다. 그래서일까.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바다이야기룰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그룹이 있다면 바로 청소년들이다. 그레타 툰베리라는 인물은 이미 하나의 상징이 됐고, 그가 주도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전세계 청소년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벌이는 행동도 있다. 이른바 ‘기후소송’이다.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기후위기의 야마토게임다운로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해 이슈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저항 모델을 전세계로 확산시킨 것이 바로 미국에서 2015년 처음 제기된 ‘켈시 로즈 줄리아나 대 미국 정부’ 소송이다. 켈시 로즈 줄리아나를 비롯한 21명의 청소년·청년 활동가가 미국 정부의 반환경적 정책으로 일상과 터전을 위협받고 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기후 역행에 소송 건 미국 청소년
다큐멘터리 ‘청소년 v 정부: 기후 정의를 외치다’는 미국 청소년들의 기후소송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아낸 작품이다. 소송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서남북으로 드넓은 나라답게 그들의 사연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홍수로 대피했고, 누군가는 가뭄으로 말라버린 땅바닥을 마주했고, 누군가는 끝없는 산불을 버텨내야 했으며, 누군가는 무분별한 벌목과 석유공장 건설로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기후위기로 인해 더 자주, 더 강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로 결정한 데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실망스러운 행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부에 오바마 대통령의 기후위기 대응 관련 발언이 연달아 나오는데, 그답게 화려한 연설로 전세계가 기후위기에 맞서도록 촉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내 내레이션이 조용히 깔린다. “훌륭한 레토릭이죠. 하지만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어요.” 바로 다음 장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5대 유전지대 중 한 곳인 오클라호마를 찾아 자신의 정부가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석유를 시추했다고 자랑한다. 방송 토크쇼에 출연해 같은 자랑을 하며 으스대는 장면도 나온다.
미국 기후활동가들이 판단하기에 미국 정부는 아주 오랫동안 일관되게 이렇게 언행을 불일치해왔다. 멀리는 1980년대에 부임했던 로널드 레이건부터 아버지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아들 조지 부시, 그리고 오바마까지. 그들은 모두 환경보전과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했지만, 정당과 무관하게 실제 정책은 언제나 하나같이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 소송단은 미국 정부의 이런 태도가 지금의 기후위기를 불러왔다고 규정하며 그 책임을 묻기에 나선 것이다.
다큐멘터리 ‘청소년 v 정부: 기후 정의를 외치다’의 스틸컷. 청소년들이 미국 정부의 ‘기후 역행’에 항의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소송에 돌입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 시기인 2015년이었지만, 소송단이 본격적으로 맞서게 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였다. 기후위기를 믿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는 대통령, 파리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버린 대통령, 희대의 기후 악당. 말로나마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한 오바마에 비해 더 어려운 상대가 돼버린 셈이지만, 소송단으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입법은 숫자 싸움이고 행정은 권력 싸움이지만, 사법은 증거와 기록의 싸움이니까. 소송단 누군가 말했듯, “법정은 기후변화 부정론이 통하지 않는다”.
법원은 그저 “지금은 아니다”
소송 결과는 어땠을까. 소송단은 패배했다. 5년의 공방 끝에 연방 항소법원은 재판관 3명 중 2명의 의견으로 소송을 파기했다. ‘법원은 이 문제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였다. 기후위기가 문제인 것은 분명하고 미국 정부에 책임이 있는 것도 맞지만, 법원이 정부를 향해 어떻게 하라고 명령할 권한은 없다는 의미다.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입장에선 일면 이해되는 판단이기도 하지만, ‘권한’ 문제가 아니라 ‘생명권’ 문제로 접근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 판단이다. 영화 속에서 길게 인용되는 소수의견을 이곳에도 옮겨야겠다.(인터넷에서 전문을 구할 수 있는데, 장장 32쪽에 이른다.)
“정부는 미국이 합심한 응답을 애타게 부르짖을 정도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재난을 향한 직진을 늦추지 않았다. (…)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원이 개입할 시점을 정하는 데 엄밀한 과학 원리는 없다. 이번 소송에서 내 동료들은 ‘지금은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나는 ‘지금’이라고 한다. (…) 바다가 우리 연안 도시를 덮어버리고, 화재와 가뭄이 내륙을 거듭 유린하며, 폭풍우가 그 중간에 있는 모든 땅을 초토화할 때 남은 자들은 묻게 되리라.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조금밖에 못했을까?’”
10년 소송, 절반 이상의 성공
소송에 패배한 청소년들은 이렇게 물었다. “우리의 미래를 정통으로 강타할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에겐 발언권도 주지 않았다.” 이들은 정치가 주지 않은 발언권을 직접 얻고자 소송으로 나섰던 것이다. 실망스럽게도 그 결과는 패소였다. 패소 뒤 그들은 무력해졌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패소 뒤 잠시간의 좌절을 비춘 뒤, 카메라는 어느새 거리를 비춘다. 전세계에서 동시다발로 기후시위가 열리는 장면이다. 소송에 참여했던 이들의 표정에 지친 기색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 활동가들이 자주 인용하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이 있다. “도덕적 우주의 원호는 길지만, 정의를 향해 굽어 있다.”(The arc of the moral universe is long, but it bends toward justice.) 당장은 좌절되고 지치겠지만, 행동하는 한 반드시 정의에 다다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얘기다. 소송단도 어김없이 이 말을 인용한다. 그 단단한 믿음 하나로 지치지 않고 달려나간다.
이들은 거의 모든 주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이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2023년 큰 진전을 이뤘다. 몬태나주에서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누릴 권리”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 2025년 3월 연방대법원이 최종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소송은 10년 만에 막을 내렸지만(공교롭게도 다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의 일이다), 미국 모델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 일부 국가에선 유의미한 성과를 얻기도 했다. 이겼다면 좋았겠으나 애초의 목표는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었으니 절반의 성공, 아니 절반 이상의 성공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그들 자신이다. 2015년 당시 11살부터 22살 사이의 청소년·청년들이 소송의 주체였으니, 소송이 끝난 2025년 그들은 모두 성인이 됐다. 그들은 10년 동안 단단하게 연결됐다. 그들 하나하나가 각자의 지역에서 환경운동의 리더로 성장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 운동의 구호가 나온다. “공유하고(Share), 소통하고(Connect), 행동하라(Act).” 그들은 10년 동안 그렇게 했고, 이제는 각자가 리더가 되어 이 일들을 이어가고 있다.
헌재 설득해낸 청소년들
한국에도 청소년 기후소송이 있었다. 2020년부터 청소년과 어린이, 아기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서 기본권을 지키지 못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내렸는데, 놀랍게도 청구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수준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고 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정통으로 강타할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에겐 발언권도 주지 않았다”던 미국 소송단의 일갈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2024년 4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소송을 제기한 환경단체 활동가, 공동대리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소송의 취지와 쟁점을 설명하며 빠른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한겨레 기자 hyopd@hani.co.kr
그러나 2025년 8월 헌재 결정 1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송에 참여했던 청구인 김한나(초등학교 4학년)는 “헌재는 국가가 미래세대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가질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3~61%로 설정한 이번 결정이라고 다를까? 상한선인 61%조차 국제기준에서는 하한선일 뿐이며, 실제 정책 집행은 하한선인 53%에 연동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정부는 기후위기에 최소한으로만 대응할 것이라고 ‘자백’한 꼴이다. 이 결정에 시민의 자리는 없었다. 청소년의 자리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재판의 소수의견이 지적한 것처럼, 이대로라면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어째서 그 많은 사람이 이렇게 조금밖에 못했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이번 결정을 두고 ‘위헌적’이라는 말이 쏟아진다. 과학적·국제적 기준에 못 미치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적’이라는 약한 말이 나올 자리에 ‘위헌적’이라는 강력한 말을 둘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기후소송을 이끌어온 청소년과 어린이, 아기들의 공이다. 그들이 힘껏 자료를 끌어모으고 헌법재판관들을 설득해냈다. 미국 청소년들이 열어낸 길을 한국 청소년들이 이어서 걸은 덕분에 우리는 강력한 무기 하나를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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