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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 하고나면 역할 상실에 따른 공허감, 허탈감, 무력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진다.(자료사진)
ⓒ sashafreemin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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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이후 상황은 아무리 대비해도 예상과 다르게 진행된다. 어쩌면 그게 인생일지 모른다. 퇴직과 은퇴를 하고 나면 자의든 타의든 역할 상실에 따른 공허감, 허탈감, 무력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 또한 퇴직 후 정서적 혼란 아파트 청약 1순위 을 통과의례로 여겼지만 이를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외로움에 '빈 집 증후군'을 느끼고 매사 구시렁대기 일쑤였다.
'빈집 증후군'(empty nest syndrome). 이건 자녀를 다 키운 여성들이 노년에 주로 느끼는, 남편도 자녀도 다 떠나 혼자 집에 남은 듯한 우울감과 갑갑함이 주된 감정이라지만 퇴직 뒤 갈 곳이 없던 나 또 연금보험 한 비슷했다.
특히 부부간 대화가 문제였다. 뜬금없이 잔소리가 많다고 느껴졌다. 스스로 억제해도 얼굴과 표정에 저절로 불만으로 가득 찼다. 이름 붙이자면 '잔소리노인증후군'이 랄까. 나중에는 고집불통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러한 홍역에도 어느 날 내 본연의 모습에 다가가는 자연치유력을 감지했다. 답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금융단지 준공식 집에서 살림하는 역할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우울증 찾아온 아내... 불면과 수면장애까지
그렇게 내가 퇴직 후 여러 퇴행적 증후들을 어느 정도 해소할 무렵,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아내가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무언가 쫓기듯 걱정하고 자기가 의도한 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냈다.
아내의 불만과 분노에는 화 집 매매시 준비서류 까지 담겨있어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이윽고 아내는 불면과 수면장애도 겪었다.
이 즈음 이전이었다면 너그럽게 웃고 지나갔을 일에도 아내는 화를 자주 냈다. '버럭' 하는 증상도 흔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자주 싸웠다.
퇴직 전에는 바빠서 싸우거나 잔소리할 여유가 없었는데, 퇴직을 하고 나니 이제는 서로 싸움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돌아보면 사실 과거 내가 직장을 열심히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덕이 컸다. 따지고 보면 은퇴 이후 내가 겪은 혼돈과 절망, 암 투병의 과정들 중에 아내도 자기 일처럼 같이 슬퍼하고 좌절했던 것이다.
▲ 항암주사
ⓒ 이혁진
아내가 심적으로 무너지고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 순전히 퇴직 후 나 때문이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한편 최근 아내의 허리 통증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치료를 계속하는데도 차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 초조함이 역력하다. 잘 낫지 않으니 아내도 나도 힘들고 마음이 나약해지고 있다.
남편인 나는 나대로 애가 타들어간다. 뭘 할 수 있을지 나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아내는 못마땅하고 섭섭한 모양이다. 그러다 작은 일로 둘이 시비를 다투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자존심 싸움이다.
한바탕 서로 질타하는 시간이 지나면 먼저 화내거나 잔소리 한 사람이 후회하는 법. 그때 내가 터득한 교훈은 먼저 '미안하다'라고 사과부터 하는 것이다.
자기 잘못 인정하는 커플일수록 행복... 전문가들이 사과 권하는 이유
아내의 고통과 짜증은 남편의 관심과 배려가 더 필요하다는 증표일 테다. 거기서 내가 할 일은 자명하다. 남편인 내가 인내심을 갖고 더 너그럽게 기다려주는 것이다.
내게 우군도 별로 없다. 애들도 주로 아내 입장을 두둔해 내가 더 엄마에게 잘해주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애들 생각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 아내는 부부간 갈등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매일 운동하고 있다. 최근 아내의 허리 통증이 한 달을 넘기고 있어 아내도 나도 마음이 나약해지고 있다. 남편인 나는 나대로 애가 타들어간다.
ⓒ 이혁진
황혼 부부에게는 여러 위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 부부가 티격태격은 해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회복탄력성'이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이 부부 싸움을 하는 74쌍을 장기간 추적관찰해 보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양보하는 커플일수록 오래 건강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고백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무런 잘못이 없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행위는 소통과 대화에서 소위 '가성비'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 사용 해보면 오해와 갈등을 일거에 해소해 주는 마력이 숨어있다. 설령 아내에게 미안하고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말이다.
영화 <괜찮아 앨리스>에서 나왔듯, '괜찮아!'라는 표현은 주로 상대를 위한 인정과 배려의 언어다. 실제 나는 아내가 그릇을 자주 깨거나 물건을 잃으면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부부는 힘들고 지칠 때를 대비해 꾸준히 함께 운동과 취미를 살리고 있다. 누가 해결책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위기를 스스로 풀어보려는 것이다.
<은살남(은퇴 뒤 살림하는 남자)> 덕목 중 중요한 하나는 '이해와 관용의 자세'이다. 그래서 나는 다소 마음에 안 들어도 집에서 아내가 아내 나름 가꾸어온 전통과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특히 부부간 갈등은 자기 중심적인 행동에서 발생한다. 상대방을 이해하면 마음의 문이 열린다. 또한 시쳇말로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서로 싸울 시간도 아깝다.
은퇴와 퇴직 등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감히 부부와 가족 간 대화가 행복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 핵심은 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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