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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잉아, 너무 추워요. 전기가 없어요. 같이 가요.”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한 채소 농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숙소의 전기차단기가 자꾸 내려갔습니다. 동료들은 다른 농장 숙소로 옮기기로 했지만, ‘케잉아’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한 여성 노동자는 그곳에 남아 버텨보기로 했습니다. 2020년 12월20일, 경기도 포천 일대는 한파경보가 내려져 있었고 체감온도는 영하 20℃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날 숨진 채 발견된 그녀의 이름은 누온 속헹, 나이는 서른한 살이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4년9개월째, 3주 뒤 캄보디아로 돌아갈 비행기표를 구매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를 맡아 진행하며 숱한 죽음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위험한 사업장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며 여러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놀랐던 .은 그들이 겪는 고통 중 상당 부분이 악의를 가진 누군가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제도의 결과라는 .이었습니다.
우리는 차별이라고 하면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폭행하는 것처럼 가해자가 분명한 사건을 떠올립니다. 이를 대인 간 차별(interpersonal discrimination)이라고 부릅니다. 2025년 7월 영상이 공개되며 파장을 일으켰던 전남 나주시 벽돌공장 지게차 결박 사건이 대표 사례입니다. 한국인 노동자가 30대 스리랑카 노동자를 벽돌 더미에 산업용 비닐로 묶고 지게차로 들어 올려 조롱했던 사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야만적 인권침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차별은 노골적인 폭력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차별은 가해자를 찾을 수 없는 형태로 발생합니다. 주거와 교육을 포함한 여러 영역에서 인종 분리를 합법화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나 미국의 짐크로 법으로 인해 수많은 흑인이 고통받았지만, 가해자로 특정인을 지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구조적 차별(structural discrimination)은 종종 법이 옹호하는 형태로, 사회 구성원 다수가 동의하는 규범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은 부조리한 시스템을 방치하는 관성, 즉 행동하지 않음(inaction)을 통해 작동합니다.
속헹과 같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더 많이 다치고 죽는 과정에는 이러한 구조적 차별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는 왜 위험한 사업장에서 일하게 될까요? 답은 제도의 설계 안에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의 고용 기회를 보호하기 위해, 고용주가 일정 기간(통상 3~14일) 한국인을 채용하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는 증빙 자료를 제출한 경우에만 외국인 고용을 허가합니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는 저임금의 위험한 영세 사업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시스템하에서는 고용주도 일터의 환경을 개선할 이유가 없습니다. 열악한 환경을 방치해도 노동력이 계속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고용허가제 아래서 사업장을 선택할 권리도, 변경할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산업재해 인정 과정에서도 구조적 차별이 작동합니다. 연구하는 내내 돌연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소식을 계속 접했습니다. 건설노동자의 추락 같은 사고사나 탄광 노동자의 진폐증 같은 질병사와 달리, 돌연사는 말 그대로 갑작스럽게 심장이 멈추어 사망하기에 직업과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현재 규정은 돌연사 직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60시간을 넘으면 업무와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추정해 산업재해로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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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준은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에게 동등하게 적용됩니다. 문제는 이주노동자가 돌연사로 사망했을 때, 어떻게 그들의 근무시간을 확인하고 누가 산업재해를 신청할 것인가입니다. 고용주에게서 근무시간에 대한 정보를 얻는 일은 요원하고,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가족은 본국에 있습니다. 그렇게 돌연사는 그저 운이 나빠 발생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립니다.
건강보험료는 내고, 병원은 안 가고
한국인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허리 디스크라고 불리는 요추추간판탈출증입니다. 누적 외상성 질환인 요추추간판탈출증은 노화와 함께 위험이 급격히 증가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만성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직업병 여부를 입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정 기준은 오랫동안 허리에 무리를 주는 작업을 일정 기간 이상 해왔는지 따집니다. 예를 들어 1994년 제정된 노동부 예규에서는 그 기간이 10년 이상이었고, 시간이 지나며 5년으로 줄었다가 현재는 명시적 기간 제한이 삭제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작업에 장기간 노출될수록 요추추간판탈출증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가능성은 올라갑니다.
2021년 6월 경기도 포천시 한 농가의 이주노동자 숙소와 화장실 모습.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세 명이 화장실과 비닐하우스 숙소를 사용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그런데 한국에 고용허가제로 오는 이주노동자는 최대 4년10개월만 일할 수 있습니다. 5년 이상 합법적으로 체류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이 생길 수 있어, 이를 피하도록 설계된 제도입니다. 4년9개월을 일했던 속헹이 프놈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만성질환을 가지게 되었을 때, 산재보험으로 인정받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누구도 ‘이주노동자는 요추추간판탈출증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게 하라’고 정하지 않았지만, 체류를 제한하는 법이 결과적으로 그런 차별적 알고리즘을 작동하게 만듭니다.
이는 임금 체불에서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액은 2019년부터 4년 연속 매년 1000억원을 넘고 있습니다. 2024년 전체 임금 체불 피해자 가운데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8.2%였습니다. 전체 취업자 중 이주노동자 비중이 미등록을 포함해도 4% 수준임을 감안하면 인구 비중의 약 두 배에 이릅니다. 임금 체불이 발생해도 이주노동자는 언어와 행정의 장벽 때문에 고용노동청에 신고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시간입니다. 체류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절차가 길어지면 노동자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고용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무기 삼아 임금을 주지 않고 버티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절차가 공정하다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돈인데도 합법적 체류를 제한하는 법이 체불 임금을 받아낼 권리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2023년 7월10일 경기도 한 농장 옆에 마련된 이주노동자 기숙사에 빨래가 널려 있다. ⓒ시사IN 박미소
2025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발생했던 사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필리핀 계절노동자 91명은 중간 브로커의 개입으로 2억원에 달하는 임금을 체불당했습니다. 계절근로자 제도로 한국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최대 8개월로 제한된 그들은 계속 한국에 체류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출국했던 이들은 돈을 돌려받기 위해 다시 한국에 입국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피해자가 계속 발견되었습니다. 경찰 추산에 따르면 전체 임금 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는 900여 명, 피해액은 약 12억원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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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은 병원 이용에서도 구조적 차별로 고통받습니다. 부검을 통해 드러난 속헹의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이었습니다. 동료들은 속헹이 피를 토하는 것을 본 적 있다고 증언했지만, 그녀는 한국에서 일하는 5년 가까운 기간 병원에 간 적이 없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병원 이용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어 장벽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업주의 허락 없이는 일과 중에 병원에 가기 어렵습니다. 또 진료비와 교통비, 하루를 쉴 때 받지 못하는 임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는 같은 월급을 받는 한국인보다 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냅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노동자 중 속헹처럼 농업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은 절반 이상이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에 들어갑니다. 영세 개인 농가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본래 소득과 재산, 자동차 소유 여부 등을 종합해 산출합니다. 외국인은 재산과 자동차가 없어서 보험료가 낮게 책정될 것이라 전제하고, 이들에게는 내국인과 달리 전체 가입자의 ‘평균보험료’를 별도의 하한선으로 적용합니다. 산출된 보험료가 전체 평균보다 낮으면 평균보험료를 부과하고, 평균보다 높으면 그대로 부과하는 것입니다. 적게 내는 길은 막아두고 많이 내는 길만 열어둔 차별적 알고리즘이 그들에게만 적용됩니다.
이러한 차별은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의 성격을 고려할 때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사회보험은 삶에서 위험을 분산시키는 수단입니다. 그 분산은 두 방향으로 일어납니다. 하나는 공동체 차원의 분산입니다. 같은 시기를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건강한 사람이 낸 보험료가 지금 아픈 사람의 치료를 떠받칩니다. 다른 하나는 생애에 걸친 분산입니다. 보통 건강한 젊은 나이부터 일을 꾸준히 하며 이용하는 의료서비스에 비해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내고, 나이가 들어 질병으로 아플 때 혜택을 받는 형태로 작동합니다. 즉, 젊은 시절의 내가 나이 든 나를 부양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건강한 몸으로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일을 시작합니다. 베트남·타이·네팔 등 국가에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만 18세 이상 39세 이하여야 하고,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1960년대 독일에 가서 광부나 간호사로 일한 이들이나 1970년대 중동의 건설 현장으로 떠난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해외에서 오는 이주노동자들 역시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이들이 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가장 건강한 시기에 들어와 일하며 보험료를 내고, 나이가 들어 병들기 쉬운 시기가 되면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한국에서 전체 이주민의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매년 큰 흑자를 기록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연구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 중 저를 가장 먹먹하게 만든 이야기는 이주노동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겪는 구조적 차별이 아니었습니다. 죽음 이후 그들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연구 목적은 이주노동자의 사망 실태를 파악하는 일이었는데, 자료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어떤 이주노동자가 언제 무엇으로 죽는지에 대해 어떠한 통계도 발표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연구팀은 확보 가능한 자료를 모두 모아 추정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이주민 사망자 20.3% ‘변사’
2022년 기준으로 연구팀이 사망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던 이들은 산재보험과 삼성화재보험 등에 기록이 남아 있는 214명에 불과했습니다. 경제적 보상을 이유로 기록이 필요했던 이들을 제외한, 3000명이 넘는 이주민의 사망 원인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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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수집하는 이주민 사망 자료에는 3551건의 죽음 중 63.9%가 ‘병사’를 원인으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사망 자료에서는 암·심장질환·폐렴처럼 질병 이름과 구체적 진단명으로 사망 원인이 구분되는데, 이주민에게는 그 모든 질병이 ‘병사’로 묶여 있었던 것이지요. 해당 자료에서 ‘병사’는 원인을 알려주는 정보가 아니라 행정적 편의로 만들어진 텅 빈 범주였습니다.
자료가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주민도 한국인과 똑같은 사망진단서를 작성합니다. 다만 한국인의 경우 제대로 된 사망통계를 내기 위해 사망신고서와 연계된 행정자료 22개를 모아 검토하고 보완해 사인을 확정하는 작업을 매월 반복하는데, 이주민의 사망을 두고는 그 작업이 생략된 것입니다. 이주민 사망통계 부재는 인식의 한계가 아니라 국가 행정의 선택이 만든 결과입니다.
2023년 7월6일 동양건설산업이 시공하는 충북 청주시 오송파라곤 2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베트남 이주노동자 쿠안 씨의 임시 분향소가 공사 현장 한쪽에 마련되어 있다. ⓒ시사IN 신선영
그렇게 사망한 이주민 중에는 변사와 무연고 사망이 많았습니다. 변사는 원인이 분명하지 않거나 사고나 범죄와 같이 외부 요인으로 갑작스럽게 맞이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인 변사자는 2만2000명으로 전체 사망자 37만2939명 중 5.9%입니다. 이주민의 경우 사망자 3551명 중 722명이 변사로 사망해 20.3%로 3배 이상 그 비율이 높았습니다.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한국인은 가장 흔한 이유가 57.2%를 차지하는 자살인데, 이주민은 57.5%를 차지하는 ‘기타’입니다. 한국에선 10.9%에 불과한 ‘기타’가 이주민에게서는 변사 중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무연고란 시신을 인수해 수습할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2022년 자료를 기준으로 이주민 사망 중 무연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2.90%로, 한국인의 1.30%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이 차이는 연령을 고려하면 더 분명해집니다. 한국인 무연고 사망자는 60세 이상 고연령의 비율이 높은 반면, 이주민 무연고 사망자는 대다수가 60세 미만입니다. 따라서 젊은 연령으로 한정해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 커집니다. 연고자가 없어 사망신고 되지 않을 가능성이 이주민에게서 압도적으로 높은 것입니다.
왜 이주민에게 무연고 사망 위험이 높을까요? 한국에서 일하다 숨진 이주민의 시신을 안치실에 보관하면 하루 7만원가량 들고, 본국으로 보내거나 한국에서 장례를 치르면 운구비와 시신 송환비를 더해 최소 10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듭니다. 특히 산재보험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비용이 더 늘어나지요. 보상과 장례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경기도에서 일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사망 시 경기도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관내 사망이면 10만~15만원인 화장 비용이 관외 사망으로 취급되어 100만원가량으로 뜁니다. 그런데 법적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무연고사로 처리되면, 화장을 하고 유해를 뿌리는 일까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연고가 없는 죽음은 그렇게 늘어납니다.
4월2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가 열렸다. ⓒ시사IN 박미소
속헹의 사례로 돌아가보지요. 그녀가 사망한 지 499일이 지난 2022년 5월 근로복지공단은 그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녀의 애칭과 이름, 사인과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그 죽음에 함께 분노하고 연대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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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동료의 증언을 모으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소견서를 받아, 간경화의 몸으로 장시간 일하며 한파에 난방 없는 숙소에서 지낸 것이 죽음을 불러왔다고 주장하며 유족과 함께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용노동부는 사망 당시 숙소 난방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고, 경찰은 함께 살던 동료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입단속을 했으며,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은 자국 노동자들에게 이주인권단체와 접촉하지 말라고 안내했습니다. 유가족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 시신은 서둘러 화장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속헹은 아마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망자 3000여 명 중 하나로, 개인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는 판단하에 ‘병사’라는 막연한 원인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면, 닿았더라도 장례와 시신 운구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면 무연고로 처리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구조적 차별입니다. 누군가 죽음을 지우려는 적극적인 행동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설계가 그런 죽음을 구조적으로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사인 불명(unknown cause of death)과 무연고(unclaimed death)는 모두 불(不)과 무(無)라는 부정어를 품고 있으며, 영어로는 ‘언(un)’이라는 동일한 부정접두사를 앞세웁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은 미등록(un-documented)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더욱 빈번히 나타납니다.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를 삶과 죽음 모두에서 부정어로 규정되는 세계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신어(Newspeak)라는 언어가 등장합니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용이 허락된 어휘를 정리한 인공 언어입니다. 이곳에서는 ‘나쁘다(bad)’라는 단어 자체를 없애고, ‘좋다(good)’에 부정접두사를 붙인 ‘안 좋다(ungood)’로 대체합니다. 체제가 원하지 않는 의미는 고유한 이름을 얻지 못하고, 오직 바람직한 것의 부정형으로만 언어화되는 것입니다. 진리부(Ministry of Truth)에서 신어 사전을 만드는 사임은 주인공 윈스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좋다’는 말이 있는데 ‘나쁘다’는 말이 무슨 필요가 있나. ‘안 좋다(ungood)’면 충분하지”라고요. 그리고 그러한 언어가 가져올 세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지요.
“신어의 목적 전체가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겠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그걸 표현할 단어 자체가 없어질 테니까. 앞으로 필요할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고, 그 뜻은 엄격하게 고정되며, 부차적인 의미들은 지워지고 잊힐 거야. (···) 해마다 단어는 줄어들고, 의식의 범위도 조금씩 더 좁아지지. (···) 혁명은 언어가 완벽해질 때 완성돼.”
부정어로만 묘사되는 인간은 자신의 고유함을 박탈당합니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자가 아닌 자가 되고, 몽골에서 온 노동자는 한국인이 아닌 노동자가 됩니다.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중심에서 벗어난 존재, ‘아닌’ 것으로만 규정되어 표준이 되는 언어의 바깥으로 밀려납니다. 이름과 얼굴은 물론이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슬퍼했던 그 고유한 역사가 지워집니다. 고유함을 박탈당한 존재는 애도될 수 없습니다.
〈위태로운 삶〉에서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9·11 이후 미국 사회가 누구의 죽음은 애도하고 누구의 죽음은 흘려보내는가를 물으며, ‘애도 가능성(grievability)’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어떤 삶은 잃으면 마땅히 슬퍼해야 할 삶으로 여겨지고, 어떤 삶은 그 상실이 애초에 상실로 이해되지 않는 영역으로 밀려납니다. 그렇게 애도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지워집니다. 실은 농업과 어업,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노동을 하던 이들이 얼굴 없는 죽음이 되어 사라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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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죽음은 애도를 위한 투쟁의 가능성까지 소멸시킵니다.
“일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 먹던 기억”
주디스 버틀러는 누군가의 죽음이 애도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죽음 이전의 삶을 가치 있다고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삶의 가치, 모든 삶의 가치에 대한 더욱 첨예한 이해가 확고해지려면, 어떤 얼굴이 공적 시야에 들어오도록 허용되어야 하고 보여야 하며 들려야 한다. 그래서 애도가 정치의 목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애도하는 능력이 없다면 폭력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삶에 대한 그 이해를 잃게 된다는 말이다.”
농업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의 두 번째 ‘찾아가는 노동인권버스’가 2022년 7월23일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캄보디아 식당에서 진행됐다. 이날 모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영상을 시청하며 함께 。심 식사를 했다. ⓒ시사IN 신선영
그 끝에 오웰이 〈1984〉에서 만들어낸 단어, 언퍼슨(unperson)이 있습니다. ‘무인(無人)’ 혹은 ‘비인간’으로 옮겨지는 이 말은 단순히 어떤 존재를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남긴 모든 기록을 지워,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소설 속에서 빅브라더의 당은 거슬리는 사람을 증발(vaporize)시키는데, 이는 그를 몰래 죽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신문 기사와 사진, 명부와 문서에서 그의 이름을 모두 찾아내 고쳐 쓰거나 폐기합니다. 주인공 윈스턴이 진리부에서 매일 하는 일이 바로 그 노동, 곧 한 사람을 기록에서 지워 비인간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렇게 지워지고 나면 그가 태어났다는 기록도, 일했다는 기록도, 죽었다는 기록조차 남지 않습니다. 죽음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말소입니다.
오웰의 무인(unperson)과 한국의 이주노동자 ‘미등록·사인 불명·무연고’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오웰의 세계에서 한 사람은 국가가 그의 기록을 적극적으로 지워야 비로소 사라집니다. 반면 한국의 이주노동자는 그 반대의 경로로 같은 자리에 도달합니다. 작위(作爲)를 통한 말소가 아니라 부작위(不作爲), 행동하지 않아 생겨나는 말소입니다. 디스토피아에서는 국가가 손을 써야 사람이 사라지지만, 현실에서는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사람이 사라집니다. 합법과 규범으로 존재하고 부작위로 작동하는 구조적 차별입니다.
2024년 저는 한국에서 일하다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을 만나기 위해 방글라데시를 찾았습니다. 이슬람 국가를 처음 방문하는 터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술은 물론이고 돼지고기도 금기인 나라입니다. 한국에서 만든 라면이나 초코파이도 선물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라면수프와 초코파이 마시멜로에는 돼지에서 추출한 기름이나 젤라틴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의 가구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 수술로 다시 붙였던 한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산업재해 경험을 묻는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한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한국에 대한 원망 섞인 한마디를 짐작하고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말을 멈추더니 한참 동안 아련히 창밖을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를 먹던 기억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고된 노동을 하며 산업재해로 절단 사고까지 당한 그가 한국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하루를 끝내고 맞이한 저녁의 평범한 한때였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를 삶의 영역 바깥으로 계속 밀어내지만, 그들은 해 질 무렵의 삼겹살과 소주를 기억하며 희로애락의 시간을 간직한 지워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부정의 언어로 구성된 세계는 감히 담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김승섭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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