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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하나 무슨 위에 작품 있는 아니란게[이준수 기자]
빌 게이츠 회고록을 읽고 교육적 희열을 느꼈다면 좀 이상한 걸까. 초등교사인 내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이야기는 답답한 교육 현실을 타개하는 통쾌한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최근 나의 교육적 화두는 '어쩌다 초등 의대반까지 성황인 걸까'라는 의문이었다.
안정적이고 비교적 높은 수입을 기대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의사. 좋은 직업 임에는 확실해 보인다. 초등 의대반 관련 사교육은 대치동에서 십여 년 전부터 화제가 되었지만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활황을 띄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이 2024년 7월 중순부터 보름간 조사한 결과 전국 17개 시도 학원가 및 과열지구를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제주를 미니주택가격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초등 의대반 홍보물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평균 4.6년의 선행학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의대'로 대변되는 좁디 좁은 문을 향해 절대다수가 교육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누가 봐도 무리하는 상황이다.
과도한 선행, 속진 학습이 대다수 학생에게 효과가 있을까? 이른 대입 준비가 부 대출편의점 모들의 노후자금까지 저당 잡혀 가면서까지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의대 정원이 확대되어 의사 공급이 늘어나면 기대했던 수입이나 현재와 같은 지위가 유지될 수 있을까? 같은 여러 추가 의문들이 따라붙는다.

빌 게이츠의 회고록에서 찾은 교육적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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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스 코드> 표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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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본인의 인생 이야기를 직접 쓴 <소스코드>를 읽으면서 나는 엄청난 해방감과 혁명적인 통쾌감을 느꼈다. 이 사람은 남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국인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하버드 중퇴까지 해버렸다. 하버드에서 배우는 것보다 직접 회사를 운 신협대출 영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무지 망설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음은 <소스코드> 20쪽에 나오는 문장이다.

"3년 반 후,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나는 여전히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크사이드스쿨의 친구 중 한 명인 폴 앨런이 내 기숙사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획기적인 컴퓨터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뜬 목소리로 알렸다. 나는 우리가 그 컴퓨터를 위한 BASIC언어를 작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빌 게이츠의 어린 시절


ⓒ 열린책들




빌 게이츠의 학창 시절이 주는 시사점

어떻게 하면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만들어지는 걸까. 교육계 종사자의 직업병처럼 <소스코드>에 등장하는 빌 게이츠의 학창 시절을 비법 파헤치듯 읽었다. 그는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는 아니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다만 어릴적부터 수학, 과학 분야에 큰 흥미를 보였다. 백과사전을 통째로 읽은 일화는 유명하다. 빌게이츠 스스로도 "요즘 같았으면 자폐 진단 받았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내가 책에서 전율했던 파트는 빌 게이츠가 13세였던 1968년에 입학한 레이크사이드 스쿨에서의 생활 부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단계다.
빌 게이츠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게 된다.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최첨단 교육 장비를 갖춘 셈이었다.
빌 게이츠는 훗날 마이크로 소프트를 함께 세우게 되는 2살 터울의 형이자 친구 '폴 앨런'과 컴퓨터 클럽을 만든다. 클럽 회원들은 BASIC 언어를 사용하여 온갖 프로그래밍을 연습한다. 마치 열정 가득한 아이들이 모인 한국의 방과 후 컴퓨터 교실처럼.
그런데 위기가 찾아온다. 당시 컴퓨터 사용 시간은 유료였다. 학생들이 프로그래밍에 열중한 탓에 학교가 컴퓨터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예산을 모두 소진해 버린 것이다.
컴퓨터 클럽이 문을 닫을 수 있는 위기에도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매우 비학생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한다. 범상치 않은 중학생들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학교의 어린 프로그래머 몇 명이 자신의 벤처 사업을 도와주면 회사에 들여놓은 새로운 DEC 컴퓨터에 무료로 접속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이것이 정말 놀라운 부분이다)."(167쪽)


컴퓨터 산업이 전문화된 현대에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1968년 당시에는 소프트웨어가 무척 허술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클럽 멤버들에게 프로그램의 오류를 수정하는 기회는 돈 내고도 하지 못할 소프트웨어 회사 인턴십 경험이 되었다.

나는 학생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회사도 대단하고, 고가의 컴퓨터 교육 기회를 제공한 학교도 대단해 보였다. 한국이었으면 가능했을까? 21세기로 치면 블록체인 기업이 중학생들에게 일감을 맡긴 셈 아닌가. 어쨌든 빌게이츠는 놀랄 만한 집중력으로 놀이처럼 일감을 해치워 버린다.
광란의 십 대 답게 시스템을 해킹하여 불법으로 더 많은 컴퓨터 시간을 누리다가 발각되어 한동안 차단 당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실력을 인정받아 일을 계속하게 된다. <소스코드> 214쪽에서 흥분으로 가득찬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해 여름 우리의 대화는 대부분 컴퓨터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우리는 처음 프로그램을 작성한 이후 1년 반 정도에 걸쳐 실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돈을 벌 수 있을까? 켄트는 우리가 그럴 수 있다고 확신했다."(214쪽)










▲  레이크사이드 스쿨 시절의 빌 게이츠


ⓒ Lakeside School Archives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삼은 빌 게이츠

여기까지만 해도 지역 신문 화제의 인물 코너에 실릴 법한 사건이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멈추지 않는다. 기왕 소프트웨어 기술을 익혔으니 이참에 제대로 물건을 만들어서 팔아보자는 발상을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유수의 사립 고등학교 혹은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이 수능 수학 특강을 듣지 않고 컴퓨터 동아리 활동에 미쳐 있으면 부모나 교사가 가만히 놔둘까. 그것도 변호사 아버지와 사회사업가인 어머니를 둔 엘리트 고등학생을.
어쨌든, 당돌한 십 대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교통량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지자체에 팔 계획을 세운다. 이른바 트라포데이터(Traf-O-Data) 프로젝트다. 기존에는 사람이 수작업으로 하던 작업을 자동화하면 충분히 팔리지 않을까? 하는 비즈니스적 발상을 한 것이다.
몇 가지 기계적 결함과 오류로 인해 수익 창출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잃을 게 별로 없는 십 대 사업가 아닌가. 오히려 이 실패를 발판 삼아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마케팅 기술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한국 십 대의 현실과 빌 게이츠의 자유
이 시절의 빌 게이츠는 진짜로 재미있어 보인다. 새로 나온 기술을 배우고, 기술을 조합해 물건도 팔고, 사랑하는 컴퓨터도 실컷 만지고.
끝내주는 십 대 시절이라고 회상하는 대목에서는 좀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십 대 시절은 '인내', '방황', '짜증'으로 대표되는 부정적 감정과 연결된다. 그런데 인생 최고의 자유로움과 가능성을 누리던 청소년기라니.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설립 이후의 전설적인 업적보다 빌 게이츠가 기억하는 십 대의 이미지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해 봄에는 거의 1백 시간 동안 지하 타임 터널을 떠나지 않고 계속 일함으로써 기존의 내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거의 나흘 동안 샤워도 하지 않고 거의 먹지도 않았다." (283쪽)










▲  폴 앨런과 빌 게이


ⓒ Barry Wong / The Seattle




입시 경쟁의 한계,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

나는 <소스 코드>를 읽는 내내 자주 상상했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ADHD 치료약을 먹어가며 수능 공부에 올인하는 대신 각종 분야에서 창업하는 모습을.
이해는 한다. 한국은 세계 1등 미국과 달리 제약이 존재한다. 동아시아의 끝자락에 섬처럼 자리 잡아 자원도 별로 없고, 말이 통해서 편하게 직업 활동을 다닐 수 있는 이웃 국가도 없다. 이 답답한 고립계에서 '교육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는 오랫동안 진리로 통했다.
실제로 해방 이후 한국은 인적자원을 개발해 근대화에 성공하여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인적 자원'으로 취급당한 학생이 고통받았다.
'하면 된다'를 외치며 내부 경쟁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결과가 바로 '초등 의대반'과 '합계출산율 0.72'다. 이쯤 되면 극단까지 온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압박할 학습량도, 낮아질 출산율도 없어 보인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시장이 만만치 않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제조업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향후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업종도 고급 기능을 갖춘 인공지능이 서서히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엄혹한 현실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흐름은 공고해질 것이다.
언젠가부터 입시에 올인하는 것이 한계효용 면에서 매력이 떨어져 보인다. 이제는 입시가 아니라 빌 게이츠처럼 창업에 뛰어드는 선택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소스 코드>는 오랜만에 두근두근 거리며 교육적 희망을 품게 하는 책이었다. 빌 게이츠라는 인물은 단순히 위대한 기업가가 아니었다. 이제는 끝내주게 열정적이고 행복한 십 대를 후회 없이 보낸 남자이자 모험가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스 코드>의 판매 수익금은 비영리 단체인 유나이티드 웨이 월드와이드(United Way Worldwide)에 기부될 예정이다. 끝까지 멋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