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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 3차 티브이(TV) 토론회에서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 행위를 언급한 데 대해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도 없다”며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란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비판이 거세지자 이 후보는 28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인터넷에 있는 발언 하나를 소개한 것”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유명 정치인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확산되고 나에게당신은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차별 표현을 생방송 토론회에서 여과 없이 재현함으로써 ‘이런 발언을 해도 되는 것처럼’ 오인하게 한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발언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연차휴가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 3차 티브이(TV) 토론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발언을 한 데 대해 ‘정치하는 엄마들’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등이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시민 3만7728명과 함께 고발장을 낸다고 밝혔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별내선김수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이날 한겨레에 “대선 후보자 티브이 토론이라는 공적 토론장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정의를 묻는 척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재현하는 표현을 한 건 대중, 특히 청소년들에게 ‘그런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장을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연대·언론개혁시민연대 등 16개 단체가 꾸린 ‘혐오와 검열에 신차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21조넷)도 성명을 내어 “이 후보 발언은 일부 남성 중심(남초) 커뮤니티 안 여성 혐오 문화를 그대로 옮겨 왔다”며 “자신을 지지하는 그룹에 소구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던져 이득을 취하기 위해 혐오를 활용했다”고 짚었다. 실제 이 후보 지지 기반인 20~30대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진실을 알린 것”, 주민등록등본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며 그의 발언을 두둔하고 폭력적인 표현을 다시 언급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28일 열린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 유세 현장에서 한 여성(노란 옷)이 지난 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이 후보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 후보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유세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발언 출처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쪽에서 2021년에 얘기했던 캡처(갈무리) 사진”이라고 밝혔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극우 성향의 유튜브 채널 등에서 이재명 후보 아들로 보이는 인물이 쓴 댓글이라는 주장이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채 퍼지고 있는데, 이를 “이 후보 가족 검증” 차원에서 언급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대통령 후보가 이러한 발언을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삼는 일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참혹한 사건이며 여성의 인권과 존엄을 훼손하는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와이더블유시에이(YWCA)연합회도 “이 후보의 발언은 단지 여성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대한 폭력”이라며 “혐오 발언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사회적 약자를 더 취약하게 만든다”고 짚었다.
더구나 성폭력 가해 장면을 묘사하는 발언인 까닭에,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할 우려도 크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이 후보는 단순히 여성의 신체 부위를 언급하는 것을 넘어 ‘어떤 도구를 이용해 어떤 행위를 한다’며 성폭력 피해 장면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며 “이런 발언은 청중을 성폭력 피해 상황에 노출시킬 뿐 아니라, 유사한 피해 경험을 가진 이들이 다시 과거 기억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트라우마 재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016년 신설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제30조)엔 “성폭력 등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선정적으로 재연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차별을 강화하는 혐오 발언을 한 정치인에 대해 명확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 의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후보 발언은) 미국 같으면 대선 후보가 에프 워드(F***, 욕설)나 엔 워드(N****, 인종차별 표현)를 공식 토론에서 입에 올린 격”이라며 “그런 발언을 한 후보는 그것으로 끝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유럽평의회는 2019년 4월 ‘혐오 표현에 맞서 싸우는 데 있어 정치 지도자의 역할과 책임’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며, 정치 지도자는 혐오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이 한 혐오 표현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반대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음을 공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9년 국회의장과 각 정당 대표 등에게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정치인들의 혐오 표현을 예방·시정하기 위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