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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그렇게 아까는 거예요. 없을 찔러보기로 훔치다니요[※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상회음. 그림 김득신 사진 출처 : 간송미술관


'삼복적정주가
더위엔 입술에 묻은 밥풀도 무겁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여름이 왜 이리도 '무거운' 계절인지 새삼 체감한다. 기상청의 폭염 특보와 에어컨, 냉음료, 휴가 계획은 우리가 더위를 견뎌내는 현대적 도구다. 그러나 냉방기나 양서류 수경재배도 없었던 옛 선조들은 도대체 어떻게 무더운 삼복의 여름을 견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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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에게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건네는 메시지를 되짚어본다.
음력 6월에서 7월, 즉 삼복은 해마다 가장 극심한 더위가 찾아오는 시기다. 고된 농사일에 지친 선조들에게 더운 여름은 곧 생사의 기로였다. 그래서 이즈음이면 몸을 보양하는 '복달임' 풍습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왕실 관리들은 소고기와 얼음을, 양반파칭코
은 삼계탕이나 소고깃국, 민어탕 같은 고급 요리를 먹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민은 간소하지만 정성껏 끓인 백숙과 개장국 등으로 허기진 몸에 단백질과 기운을 채웠다.
삼복이라는 같은 계절을 보내며 계층, 계급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보양과 생명력을 중시했던 것, 이것이야말로 음식이 가진 집단적 위로이자 사회적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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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술 한잔, 더위에 맞서는 풍류의 시간
우리 선조들은 여름의 더위 앞에서도 술자리와 풍류를 빼놓지 않았다. 여름철 대표적인 복달임술의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음력 6월 유두 일에는 산속 폭포와 계곡을 찾아 시원함을 누리며 '하삭음'을, 7월 칠석에는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축하하며 '칠석음'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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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삭음은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풍류다. 유송과 원소가 하삭(황하의 북쪽지방)에서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더위를 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조선 선비도 그 전통을 따라 여름밤 대낮을 가리지 않고 술 한 잔에 더위를 식혔다.
특히 조선과 고려 문인들은 연잎과 줄기를 이용한 독특한 술잔(?)에 따라 마시는 '벽통주'를 즐겼다. 푸른 연잎을 깔끔하게 말아 빨대처럼 사용하고, 거기에 청주를 따라 한 모금씩 마신다. 연잎의 향긋함과 술의 풍미가 어우러지는 이 독특한 풍류는 시와 그림, 고전문학 속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인적 드문 밤, 큰 연잎에 꽃을 얹고 촛불을 켜 연못에 띄워 두면, 흔들리는 연잎의 불빛과 일렁이는 시원함이 마음마저 청아하게 적셨다.



벽통주 인공지능 제작 이미지


양반과 평민 사이의 피서법에는 차이가 있었다. 백성들은 물이 풍부한 시냇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물고기를 잡으며 더위를 잊었다. 이를 '천렵'이라 했고, 공동체적 놀이이자 생활의 일부였다.
반면, 양반들은 단출한 옷차림조차 어려웠기에, 신발만 벗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이나 폭포를 감상하는 '관폭', 잔잔한 물을 바라보며 시를 읊는 '관수'로 더위를 견뎠다.
오늘날 MZ세대가 '물멍'(물 바라보며 멍때리기)에 빠지는 이유가 이 조상 풍류와 닿아 있으니, 심신의 휴식, 관조의 미학은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다.



(좌)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그림 이경윤. (우)계심어비도(溪深魚肥圖), 그림 유숙 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원미술관 홈페이지 캡처


음식뿐 아니라 술에서도 계절의 흔적은 뚜렷이 남아 있다. 일상적이고 대중적으로는 탁주를, 신분이 높을수록 과하주처럼 손이 많이 가는 청주를 즐겼다.
여름철은 고온다습해 긴 발효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3일 남짓 짧은 기간에 담그는 '하절삼일주' 등 속성 술이 등장했다. 과하주는 탁주나 청주에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첨가해 보존성과 풍미를 키웠던 지혜의 산물이다.
선조들은 여름 고온에도 강한 누룩을 만들기 위해 복중, 특히 중복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누룩을 밟았다. 이렇게 만든 누룩은 두견주 등 향긋한 계절술로 이어졌다. 계절을 읽고 자연을 감각하는 감성이, 그들의 술과 밥상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 여름을 견디는 정신적 지침
더위를 물리치는 물리적·생리적 방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정다산전서'에서 여름을 정신적으로 견디는 여덟 가지 방안인 '소서팔사'(消署八事)를 제안했다.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텅 빈 정자에서 투호 놀이,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연못에서 연꽃 구경,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밤에 발 씻기 등이 소서팔사의 여덟 가지 방안이다.
이 팔사는 모두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텅 비우는 과정에 집중한다. 즉, '정신의 이완과 수양'을 통해 여름의 번민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집중·몰입·관조의 시간 속에서 더위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는, 시대를 초월한 휴식의 미학이다.
에어컨, 선풍기, 입맛 당기는 치킨과 냉커피가 넘치는 요즘, 우리는 더위를 물리치기 위한 문명 이기의 도움에 너무 익숙해졌다.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자연을 그리워하고, 시대를 초월해 조상들의 슬기와 정서에 닿아 있다.
올여름, 복날에는 삼계탕 한 그릇에 인삼주 한 잔으로 몸을 보양하고, 다산의 소서팔사 중 한 가지쯤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
일상의 바쁨 속에서 잠시 자연과 나, 그리고 마음의 쉼을 찾으며 선조들의 여름 풍류를 따라가 보면, 입술에 밥풀이 얹혀도 여유를 잃지 않을 진짜 여름의 품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삼복더위 속에도 꾸준히 삶을 지속한 옛 선조들은 그저 버텨낸 것만이 아니라, 음식, 술, 놀이, 수양 속에서 계절의 무게를 가볍게 나누며 삶의 품격을 지켰다.
자연과 사람, 규범과 풍류, 즐김과 자제, 그리고 심신의 수양까지 어우러진 옛 여름의 지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값진 영감을 준다.
이번 여름, 조상들의 풍류와 슬기를 기억하며, 겸손한 마음과 새로운 시선으로 더위를 딛고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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