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드로잉을 조명한 레꼴 주얼리 스쿨과 홍콩대학교 미술 박물관의 협업 전시.


“울랄라(Oh la la)!” 프랑스 출신 강사가 내 드로잉을 내려다보며 짧게 탄식했다.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그리는 중이었다. ‘울랄라’라는 표현이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 잠시 고민했다. 감탄인지 당혹인지. 내 손끝을 향한 강사의 표정에서 눈치를 챘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난감한데.’ 통창 너머 홍콩 빅토리아 하버의 전망이 펼쳐진 워크숍 룸에서 회색 종이와 얇은 붓, 물감의 농도는 제 역할을 했지만 내 손이 걸핏하면 휘 한국릴게임 청휘청했다.
“지금 작업은 빛의 구조를 그리는 겁니다.” 강사의 설명에 따라 다른 수강생들은 빛과 그림자를 조절하며 주얼리 밑그림을 차곡차곡 완성해 갔다. 이른바 구아슈 디자인. 금속의 광택과 보석의 볼륨을 평면 위에 재현하는 드로잉 작업이다. 빛과 그림자, 금속의 방향과 스톤의 입체감이 이 종이 한 장에서 결정된다. 그러니까 나는 수년 야마토통기계 만에 붓을 들고 물감을 찍어가며 주얼리 창작의 첫 단계에서 쩔쩔매는 중이었다.







1865년작 브로치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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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작 브로치 드로잉.









무료릴게임1900년작 다이아뎀 드로잉.




홍콩에 위치한 이곳은 레꼴 주얼리 스쿨 아시아 퍼시픽이다. 반클리프 아펠이 주얼리 예술의 역사와 문화, 보석학과 제작 기법을 더 많은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해 만든 교육기관이다. 강의나 워크숍, 전시, 연구, 서적 야마토통기계 및 팟캐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아우른다. 사실 주얼리 공방은 보안과 안전 문제로 외부 공개가 어렵다. 반클리프 아펠은 대신 지식을 여는 방식을 택했다. 레꼴 주얼리 스쿨은 현재 파리의 두 곳을 비롯해 홍콩, 상하이, 두바이에 마련돼 있다. 풍부한 식견을 가진 전문가, 수집가는 물론 보석에 호기심이 생긴 입문자에게도 쉽고 친밀하게 열린 교육을 제공한다. 뒤늦게 주얼리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쭉 뻗은 것은 아니고, 홍콩의 레꼴 주얼리 스쿨에서 3일간 주얼리 세계를 탐험하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레꼴 주얼리 스쿨 아시아 퍼시픽에 마련된 지프 네크리스의 탄생 스토리.





레꼴 주얼리 스쿨 아시아 퍼시픽에 마련된 지프 네크리스의 탄생 스토리.












“진주는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보석입니다. 가장 오래된 럭셔리인 셈이죠.” 다음 워크숍은 진주의 탄생과 생태계, 가치와 쓰임에 관한 배움이었다. 작은 트레이 위에 크기와 광택, 색이 미묘하게 다른 진주들이 한 움큼 놓여 있었다. 손바닥 위에 올리자 차이가 느껴졌다. 어떤 진주는 미세하게 따뜻했고, 어떤 진주는 유리처럼 차가웠다. 표면의 요철과 광택의 깊이, 둥근 정도가 조금씩 달랐다. 그 미묘한 차이가 등급을 나눈다. 자연 상태에서 하이 주얼리급 진주가 만들어질 확률은 극히 낮다. 양식 진주조차 엄격한 기준을 거쳐야 한다. 하이 주얼리 메종은 그 소수의 진주 중에서도 탁월한 퀄리티만 선별한다. 생명체에서 태어난 보석이라는 신화적 태생과 선택의 숙명이 겹겹이 응축돼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진주의 무게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건너편 워크숍 룸에서는 다른 수업이 한창이었다. 수강생들이 뭔가를 자르고 접합하느라 분주했다. 공방의 한 장면 같았는데 목업(Mock-up) 클래스였다. 얇은 주석을 나비 모양으로 잘라내고 작은 펜치로 날개 곡선을 만든 뒤 라인스톤으로 장식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요컨대 레꼴 주얼리 스쿨에서는 주얼리 밑그림을 그리고, 맞은편에서는 귀하고 가치 있는 소재를 직접 체험하는가 하면 동시에 3차원 모형을 만든다. 보석학을 머리가 아니라 체험으로 이해하는 방식. 레꼴 주얼리 스쿨이 강조하는 교육 철학의 전형이다.









창의성과 탁월한 기술력을 상징하는 지프 네크리스의 디자인.





창의성과 탁월한 기술력을 상징하는 지프 네크리스의 디자인.








주얼리 밑그림을 체험하는 구아슈 클래스.





주얼리 밑그림을 체험하는 구아슈 클래스.

일종의 현장 학습도 이어졌다. 홍콩대학교 미술박물관으로 이동해 〈주얼리 디자인: 200년을 이어온 프랑스의 노하우, 1770년부터 1970년까지〉 전시를 관람했다. 레꼴 주얼리 스쿨과의 협업 전시였다. 약 100점에 이르는 드로잉과 13점의 정교한 주얼리 작품이 영감에서 출발해 스케치로 구현되고 걸작으로 이어지는 주얼리 창작 여정을 생생하게 펼쳐 보였다.

주얼리 드로잉은 밑그림을 넘어 주얼리 제작에서 언어와 다름없다. 선으로 구조를 세우고, 구아슈로 빛과 색, 광택을 번역한 뒤 트레이싱 페이퍼로 금속과 보석의 재질감을 시뮬레이션한다. 그 다음 장인들은 드로잉을 통해 곡선의 방향과 스톤의 양감,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파악한다. 제작 과정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단계를 고유한 관점으로 보여주고, 실제 작품의 아름다움과 색상, 소재 표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얼리 드로잉은 근본이자 핵심 작업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학문적으로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중에게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제작 과정이 공방 내부에서만 이뤄진 데다, 드로잉은 장인들 사이에서만 오가던 비공개 자료인 탓이다.



레꼴 주얼리 스쿨은 ‘직접 체험을 통한 이해’를 중심으로 모든 교육이 설계된다.


반클리프 아펠의 연구 부서가 확보한 방대한 드로잉 컬렉션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획됐다. 주얼리 창작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한 장의 그림이 어떻게 작품으로 이어지는지 주얼리 드로잉에 담긴 주요한 의미를 복원한 셈이다. 비록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레꼴 주얼리 스쿨에서 한 가지 배움을 얻었다. 서툴게 그린 곡선도, 손바닥 위에서 미세하게 느낌이 달랐던 진주도, 전시장 속의 작은 드로잉 한 점도 같은 메시지를 말하고 있었다. 주얼리는 완성된 결과물만으로 오롯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클리프 아펠이 레꼴 주얼리 스쿨을 설립한 이유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주얼리 창작을 기록하고, 지식을 전승하며, 교육을 통해 주얼리 세계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 주얼리를 가격이나 희소성 중심으로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과정과 기술, 역사와 상상력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일. 레꼴 주얼리 스쿨은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교육 체계로 묶고, 연구 부서를 통해 축적하며, 전문가와 일반인이 동일한 환경에서 주얼리 세계를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주얼리 세계의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통로라 할 수 있는데, 홍콩의 레꼴 주얼리 스쿨에서 교장 선생님 같은 얼굴로 그 문을 열어준 이가 있었다. 올리비에 세구라. 그는 레꼴 주얼리 스쿨 아시아 퍼시픽 지사장이다.



레꼴 주얼리 스쿨은 어떤 목적으로 설립됐나요 이곳은 반클리프 아펠이 지닌 주얼리에 대한 깊은 열정에서 출발했습니다. 다만 그 열정을 대중과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공방은 개방이 어렵고, 장인을 직접 만나 작업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전문가를 만나고 주얼리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 을 만들자는 생각이 설립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이름 그대로 학교지만 전문 장인을 양성하는 기관은 아닙니다. 성인부터 어린이까지 누구나 주얼리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죠. 가장 중요한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이 지식과 경험을 통해 이 분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교육 철학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참고할 전례도, 경쟁 기관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새로운 교육 방식을 구축해야 했죠. 이곳의 중요한 가치는 ‘직접 체험을 통한 이해’입니다. 모든 강좌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실습 중심으로 설계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저 역시 과학자로서 보석학 강좌를 개발할 때 이상적인 수업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 강좌에서 최소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20여 개를 준비해 수강생들이 직접 다루고 비교하며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죠. 반클리프 아펠의 전폭적 지원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주얼리 모형을 제작하는 목업 (Mock-up) 클래스.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 있다면 정말 다양한 이들이 찾아옵니다. 보석이 어떤 것인지 가볍게 경험하려는 분도 있고, 업계 종사자들이 미술사나 다른 분야의 지식을 보완하기 위해 찾기도 해요. 파리에서 만났던 소녀가 기억나네요. 생일 선물로 참여한 워크숍이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됐죠. 주얼리 세계에 눈을 떠서 여러 강좌를 듣더니 프랑스 주얼리 학교에 진학해 지금은 현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인 ‘모두에게 주얼리의 세계를 연다’ 는 문장이 이런 순간에 실감됩니다.



레꼴 주얼리 스쿨에서는 직접 만져 보고 비교하며 진주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주얼리 역사와 산업이 지속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요 많은 대중과 새로운 인재가 이 분야에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창작의 폭이 넓어질수록 관심도 함께 확장되니까요. 과거에는 주얼리 디자이너가 되는 길이 제한적이었지만, 지금은 귀금속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소재로 창작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100여 년 전 르네 랄리크가 유리를 재료로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어냈던 것처럼요. 주얼리를 지속시키는 힘은 ‘열정과 감정, 전승’에 있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지식과 기술을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얇은 주석을 사용한 목업 제작 과정.


최근 주얼리 분야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는 지난 5~10년 사이 다양한 컬러 스톤이 확산됐습니다. 과거에는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클래식 스톤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하이 주얼리와 컬렉션에서도 넓은 색채 스펙트럼이 활용되고 있어요. 10~20년 전만 해도 보기 드물었던 스톤이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죠. 색의 선택지와 스톤의 천연적 다양성이 크게 확장된 셈인데요. 이는 트렌드를 넘어 장인 정신과 세공 기술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레꼴 주얼리 스쿨 아시아 퍼시픽 지사장 올리비에 세구라.


끝으로 레꼴 주얼리 스쿨의 교훈을 짓는다면요 기본 모토는 ‘발견하고, 배우고, 경이로움을 느끼자(Discover, Learn and Wonder)’ 입니다. 우리 일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죠.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스스로 탐구하라’. 주얼리의 특징 중 하나는 한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기술적 제약이 있더라도 계속 도전하면 새로운 테크닉과 소재를 통해 구현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것 그리고 발견 · 학습 · 경이로움의 가치를 믿는다면 어디든 나아갈 수 있습니다.